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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미원 제일약국 김용명 전 동문회회장님께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셨습니다.
관리자 2017-12-23 15:41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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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김용명 약사 - 40년 지역사회 위해 봉사활동 펼쳐40여년 약사, 사회단체장, 생활체육회장으로 지역사회 헌신
밑거름은 긍정적인 마인드 "주어진 여건 최선 다하는 것"

 

백범김구기념관에서 21일, 오후 2시에 거행된 '2017 국민훈장 수여식'에서 '김용명' 약사(가운데)가 '동백장'을 받고 기념활영을 하고 있다.

[KNS뉴스통신=이건수 기자] 상(賞)을 수상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맡은바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타의 모범이 됨은 물론, ㅇㅇ의 역할을 수행한 공로가 지대함으로...‘ 이 내용과 너무나 딱 맞는 그런 주인공이 21일 오후 2시,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모두가 두말없이 박수치고 축하받을 만한 분, 바로 김용명(66)약사다. 경력과 타이틀도 한마디로 화려(?)하다.

먼저 1977년 4월 청주시 미원면에 제일약국을 개업해 40여년간 그 자리에서 지역민들 건강증진을 위해 애써 왔고, 충북약사회 임원 및 회장을 지내오며 약사회발전을 위해 적극 참여하고 있다.

김용명 약사는 1999년부터 18년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으로서, 조국의 평화통일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이 단체 추천으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게 됐다. 여기에 다양한 사회단체 활동 및 생활체육발전에 기여한 공도 종합적으로 평가받아 수상으로 이어졌다.

또한 1998년부터 11년간, 새마을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생활의식을 개혁하고 돌아오는 농촌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도 전개했다.

1997년부터 생활체육회 활동에도 참여해, 충북생활체육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00세 시대를 맞아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도민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랫동안 함께 한 충북체육회 이형수생활체육부장은 “김용명회장은 각종 사회단체 장도 역임하면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한 역량을 두루 갖춘 분인데다, 특히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생활체육 활성화의 산 증인’이다" 라고 밝혔다.

현재는 2016년 3월,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통합되면서 새롭게 출범한 통합 충청북도체육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에는 청원군수 선거에도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지금도 미원면에서 약을 조제하면서 주민 건강을 챙김은 물론, 지역발전을 위한 길이라면 한달음에 달려가는 ‘숨은 마당발 봉사자’다. 인터뷰하러 약국을 찾았을 때도 훤칠한 키에 온화한 얼굴, 차분한 목소리, 외모부터가 사람들을 다가가게 하는 포근함이 배여 있다.

1977년부터 미원면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김용명' 약사. <사진=이건수 기자>

- 수상 소감 한말씀.

한번도 제가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국가에서 수여하는 ‘동백장’을 수상하게 돼, 기쁘기보다 쑥스럽기도 하다. 나보다 지역을 위해 애쓰고 있는 훌륭한 분들도 많은데, 기왕이면 젊은 분들이 받았으면 더 좋았지 않나 생각한다. 남은 인생을 더 열심히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라는 격려로 생각하고, 송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훈장을 받았다.

- 질문이 많은데 우선 정치판에도 출사표를 던진 배경은?

한마디로 제가 군수를 하면 ‘더 잘살 수 있는 청원군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열망이 있었던 것 같았다. 특히, 그 당시 5.31 지방선거에 의사, 약사 등 전문직 출신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 맘을 흔들리게 했던 것 같다.

열린우리당 청원군수 후보 공천을 놓고 변장섭 前 청원군의회장, 김현상 씨 등과 3파전을 벌이게 됐다. 5000억원의 청원군 예산을 적재적소에 유용하게 사용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았고, 자세한 행정은 몰라도 복지, 사회, 체육, 문화 분야에서 지금보다 더 잘 살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출마했는데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묻지 말았으면 한다.(웃음)

- 원래 꿈이 약사였는지.

아니다. 군인이 되고 싶었다. 70년대 군사정권시절이었고, 태권도를 했다. 경찰공무원이었던 부친의 뜻도 강했고 해서, 육군사관학교를 가려 했으나 실패했다. 상실감이 컷었다. 그래서 충북대 약대에 진학했다.

- 그 당시나 지금이나 군인보다 약사가 더 낫지 않은가?

고등학생이 무슨 사회적 관점을 파악할 정도로 성숙돼 있을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대로 할 때’가 고등학교 시절인데 하려던 꿈이 좌절됐을 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장남이었고, 가정형편도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약대를 선택했다. 대학가서도 적성보다는 현실에 맞게 나름 적응을 하려고 노력했다.

졸업 후, 서울에서 근무약사로 있다가 청주시 북문로에서 태어나 주성초, 청원중(현 남중), 청주고, 충북대 약대를 나온 청주 토박이지만, 1977년 4월26일 연고도 없는 한적한 미원면(前 청원군)소재지에 약국을 개업했다. 시골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에 걸맞게, 너그럽게 약값을 책정했고, 지역사람들과도 호흡이 어우러져 지금까지 무난하게 약국을 운영해 온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역마살이 있는 팔자라 약국 안에만 있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다양성의 연속이라 하지 않던가? 가족의 도움을 받아 약국경영과 사회활동을 병행한 것이 지금까지 사회활동을 이어오게 된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약사 며느리(서희정)와 의약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김용명'약사. <사진=이건수 기자>

- 약사회발전을 위해 청원군약사회장, 충북약사회부회장을 거쳐 충북도약사회장도 지냈는데.

1983년부터 현재까지 약사들의 근간인 충북약사회 임원으로서 약사회발전을 위해 나름 열심히 활동했다.

2000년 8월부터 시작된 ‘의약분업’시행 과정의 어려움에도 의약분업을 대비해, 약사회의 활동과 약국관리 프로그램, 처방조제와 복약지도 교육에 힘을 쏟았다. 의약분업의 실시로 약국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에 적극 협조해, 의약분업 실시를 지도하며 주민들에 대한 의약품 오․남용 예방, 의약품의 적절한 사용 등의 홍보활동을 펼쳤다.

2004년 전국체육대회, 소년체전, 2005년 전국장애인체전 등이 충북에서 개최될 때는 ‘봉사약국’을 운영하며, 전국 선수단 및 타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살폈다. 또한 설날연휴기간과 추석연휴기간, 공휴일 당번 약국운영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당번약국운영 현황을 각 분회로 파악, 참여를 독려해 약사회 및 지부 웹사이트에 홍보하거나 보건소에 통보해, 주민들이 약국을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했다.

그랬더니 2013년 2월, '약사회발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지역사회 발전에도 이바지했다'고 대한약사회에서 주는 '약사금탑상(개국약사부문)'을 받기도 했다.

이건수총괄국장이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한 '김용명' 약사를 인터뷰하고 있다.

- 약사이지만, 뭐니뭐니해도 '동백장'을 수상하게 된 주된 공적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활동이 아닌가 하는데.

그렇다. 현재도 민주평통 청주시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나의 인생 나이테라 할 수 있다. 1999년 7월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청원군협의회 자문위원으로 발을 디딘 이후, 18년 간 조국의 평화통일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적 내용도 길고 기록 사진도 제일 많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선출된 위원들이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강구하고 있는데 최근 북한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 걱정도 된다.

‘분단의 현실’, ‘통일의 중요성, ’평화통일의 당위성’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에 18년 간, 주민들이나 학생들, 그리고 자문위원들에게 특히, 이 4가지 부분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는데 노력을 쏟았지 않나 생각한다.

'국가안보는 가족사랑' 주제로 주민들 대상으로 진행한 병영체험

평화통일 기반조성 및 현장체험

정부의 평화통일 정책추진과 통일기반조성을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공감대 형성과 올바른 홍보활동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각급 사회단체, 이장, 반장, 주민들을 대상으로 2001년부터 매년 가을에 '통일 홍보 강연회'를 통해, 막연한 통일의식보다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지역행사로 자리 매김 시켰다.

지역주민들에게 한반도 분단의 현장을 직접 체험 할 수 있도록 판문점과 금강산을 견학하는 현장체험을 실시해, 국토분단의 비극과 동족간의 분단의 아픔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새삼 느끼는 기회를 제공했다.

통일세대 통일학습

미래 통일의 주역은 학생들이다. 어려서부터 올바른 통일관을 심어주고 평화와 통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일 또한, 우리 단체가 해야 할 일이기에 2007년, 문의중학교를 시작으로 관내 2개 학교를 선정해 중·고생 대상 ‘평화통일 골든벨’을 진행했다.

또한, 지역 내 중∙고생 대상으로 국립 현충원과 전쟁기념관을 견학하는 기회를 제공했는데 호응이 괜찮았다. 그래서 청원군 관내 초∙중∙고 학생들에게 분단된 현실을 인식시키는 소중한 시간을 되도록, 전쟁기념관이나 현충원, 땅굴 등을 다녀오도록 했다.

이밖에도 아무래도 안보의식이 부족한 대학생과 초ㆍ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병영체험 프로그램과 병행해, 통일준비 및 녹색성장에 대한 ‘백두대간 숲 생태원 통일캠프’도 실시했다.

자문위원들 안보의식 강화

자문위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행했다. 우선 ‘우리땅 독도 지키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통일운동이라 하면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라 생각하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자문위원 30명과 2박3일 우리 땅 독도를 방문했다. 국토에 대한 사랑과 애국심, 그리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캠페인과 독도수호결의문도 낭독하며, 우리의 뿌리를 찾기 위한 행사를 가졌다. 행사내내 자문위원들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줘서 의미가 남달랐던 기억이 있다.

2000년부터는 매년 가을에 기관단체장 및 지역사회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 그리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통일염원등반대회 겸 통일홍보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평화통일의 염원을 기리고 안보현실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하는 성과를 얻었다.

6.25전쟁을 상기하기 위해 1박2일로 통일무지개회원과 자문위원들이 군부대 병영체험을 몸소 느끼며, 평화통일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는 현장체험도 진행했고, 금강산과 고흥 나로호 일원 등에서 역량강회를 위한 ‘통일안보 워크숍’을 통해, 자문위원들의 화합과 분단의 현실을 재인식하도록 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김용명' 수상자는 수십년간 민주평통자문위원으로서 통일안보강연회, 독도지키기캠페인, 6.25 병영체험 등 주민,학생, 자문위원들을 위해 수많은 사업(행사)을 추진했다.

- 약사협회 임원,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0여년 간, '새마을협의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보통 사명감 없으면 못해낼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런 것 같다. 한번 지역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더 잘해야 되는 마음이 앞서는 것 같고, 민주평통 활동을 하다 보니까 연관성이 있기도 해서, 그땐 젊었을 때니까 의욕도 충만했다.

1998년부터 5년간 새마을운동청원군지회장, 2003년부터 6년간 충청북도새마을회장, 총 11년간 새마을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지역발전을 위한 4대 중점목표를 세우고 추진했다.

먼저 생활의식개혁운동을 적극 추진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기초생활 10대과제 실천 캠페인과 계도활동을 펼쳤고, 장묘문화개선을 위해 교육과 캠페인을 전개했다. 검소한 명절보내기, 나라사랑운동 태극기달기, 사랑의 ‘효’ 편지쓰기 운동, 새마을문고의 활성화와 독서인구 저변확대를 위한 알뜰도서 교환시장, 그리고 피서지문고를 개설해 큰 호응을 얻었고, 충효와 예절, 그리고 한문교육 등 취미교양교실도 열었다.

두 번째로 환경 가꾸기 사업이었다. 도내 유명 유원지 7개소에 여름철 피서지 환경 안내봉사센타를 설치해 편리를 제공했다. 재활용품 수집운동(특히 고철모으기 운동)과 산, 강, 하천 등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계도활동에 이어 환경교육, 수돗물 절약을 위한 화장실 절수통 설치, 관내 도로변 꽃동산, 꽃길, 야생화 거리 조성사업도 진행했다.

세 번째로 민간사회안전망운동을 전개해 이웃사랑을 실천하도록 장려했다. 청원군지회장 취임 후, 14개읍면 400여명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웃의 어려움이 발생하면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태풍으로 수해를 입은 지역을 찾아가 봉사활동, 방역, 그리고 성금도 전달했고, 폭설피해지역돕기에도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무의탁노인들을 위한 위안잔치, 불우 및 영세가정에 김장, 쌀 등을 전달하고 2년간 1억원을 들여 1200여 가구의 집을 고쳐 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점점 희미해져가는 새마을운동을 조직적으로 활성화 시키고 싶었다. 1998년부터 청원군 1000명 지도자의 회비제를 완전 정착시키고, 시군의 자체회관 건립을 적극 추진해, 8개 시군이 회관을 마련했다. 또한 각 지역 읍면을 연 1회씩이라도 순회하며, 지도자들을 격려하면서 각종 행사에 참여해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아울러 새마을운동활성화 지원금을 출연해, 조직 활성화와 자립기반 조성에 도움이 되도록 추진했다.

어려서부터 새마을 운동의 근본 정신이 무엇인지 알고 자랐기 때문에, 여러 의견분분이 있겠지만, 책임을 맡은 이상, 나름 ‘성과보다는 최선’, 을, ‘유지보다는 활성화' 시키려고 열심히 뛰어 다녔던 11년 세월이었다.

- 김회장은‘생할체육의 산 증인’이다. 생활체육과의 인연은?

1997년에 前 변종석 청원군수 권유로 청원군생활체육회장으로 취임하면서다. 그 당시 노인회, 새마을회, 체육회, 바르게살기협의회 등 여러 사회단체 중 생활체육회를 선택한 것이 계기가 돼, 나중에는 충북도생활체육회장까지 하게 됐다.

88서울올림픽을 치룬 후, 엘리트 체육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체육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높아졌다. 그와 병행해서 ‘체육과 건강’의 중요성도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생활체육에 대한 관심도 확산됐다. ‘조기축구회’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 자기 취향에 맞는 종목을 선택해, 개인적으로 아니면 동호회를 조직해 평생 운동을 생활화 하는 것이 생활체육이고 ‘생활체육회’는 이것을 국가적, 지역적으로 운동을 더 가깝게,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성껏 지원하고, 관리, 육성하는 공조직이다.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종목만 60여 개에 달하고 300만명이 생활체육을 즐기고 있다.

요즘은 건강시대요, 100세 시대다. 경제수준이 향상되면서 최고의 관심사는 건강이다. 국민들이 체육을 통해 장수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 국가적으로도 의료지원비용이 절감된다.

- 엘리트와 생활체육을 통합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수긍하기 어렵다. 1대1 통합인줄 알았는데 생활체육을 활성화 시킨다는 순수 목적보다는, 하나로 묶어놓고 제도권 하에서 단지 관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한체육회는 국위선양이고, 생활체육은 건강증진이다. 태생 자체가 틀리고, 목적도 완전히 다르잖은가? 나이든 어르신들이 국위 선양할 수 있는 기구 종목이 있는가?

예를 들자면, 탁구도 65세 이하는 하얀 공이고, 65세 이상은 황색으로 구분한다. 엘리트 체육하는 분들은 생활체육 종목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엘리트 하던 분들이 생활체육으로 돌아와 지도자 역할을 하도록 자연스런 순환구조로 이루어져야지, 강제로 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이 든다. 에어로빅을 체조협회에 통합했는데 장비도 다르고 에어로빅 지도자 양성을 위한 자격증 발급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돌출될 수 밖에 없다.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을 체육회가 관리하듯, 오로지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것은 별도의 단체가 관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다행히 타시도와 달리 충북은 마찰 없이 작년에 통합을 끝내고 잘 운영되고 있다. 저도 충북체육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통합 충북도체육회 출범을 기념하는 사진(2016. 3. 22)

- 몇 말씀 들어봐도 ‘생활체육에 대한 소신과 애착’이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회장으로서 추진해 온 주요 사업을 되짚어 본다면?

생활체육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오로지 ‘지역화합과 균형적 지역발전’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면서 전국 또는 도 단위 대회(예:국민생활체육대회, 어르신생활체육대회, 여성생활체육대회 등)참여를 통해, 주민들의 건강과 화합을 도모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건강100세! 행복100세!'라는 슬로건 아래, 충북 어르신 생활체육 동호인들의 건강축제인 ‘충북어르신생활체육대회’ 같은 경우, 보통 2,000여명의 동호인들이 참가한다. 60세 이상 어르신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건강한 노익장을 과시하며 참가 동호인들이 모두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보람이 밀려왔었다. 100세 시대를 대비해 '실버스포츠'를 활성화 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국생활체육대축전'에도 참가해, 충북선수단은 상위권 수준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또한, 종목별 동호인클럽 활성화와 교류기회를 자주 가짐으로써, 생활체육에 대한 참여 분위기 확산과 경기역량을 키워 나가도록 추진했다. 그것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호 종목과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동호인들에게 건전한 여가선용의 기회를 확대해서 지역의 생활체육을 발전시키켜 나가는 기틀을 마련하는데 주력했다.

우선 아침 또는 저녁 시간, 공원과 학교 운동장 등 주민들의 체육활동 현장에 지도자를 배치, 마을단위에 기초적인 체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생활체육광장’을 운영했다.

지역별 동호인 모임이 ‘선진형 스포츠클럽’으로 육성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미동호인클럽을 적극 가입시키기 위한 방안 등을 찾기 위해, 분기별 1회 관계자 대책회의 개최로 현재 생활체육동호인 클럽이 3,100여개, 등록회원만 16만명이 참여하고 있다.

2015.10. 24~25일 괴산군 청소년수련원 축구장에서 열린 제16회 ‘충북생활체육회장배 꿈나무어린이축구대회’

꿈나무를 조기에 발굴하고 우수선수로 육성하기 위해 ‘생활체육어린이축구교실’을 열었고, 생활체육과 학교체육의 유기적인 협조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신나는 주말생활체육학교'를 통해, 학생들에게 스포츠·레저 활동과 여가선용 기회를 제공했다.

꾸준히 지역주민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생활체육지도자를 대상으로 생활체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기 프로그램 위주로 편성해, 지도자들의 자질 함양과 역량강화는 물론, 건강 파수꾼이라는 생활체육 전문지도자로서의 품성과 자긍심을 높이는 교육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2015 충북도생활체육지도자 실기교육이 충북 단양군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가운데 김용명 도생활체육회장을 비롯해 교육에

참가한 생활체육지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생활체육을 부각시키는 최선의 방법 중의 하나로 생활체육소식지도 발간했고, 예산 범위 내에서 연 5~6개 종목대회를 TV로 중계방송 하기도 했다. 실제 생활체육을 즐기고 있는 도내 동호인수는 50만 명 정도 참여하고 있는데, 종목별 연합회 조직결성을 통해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으로 동호인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기억나는 또 하나는 '함께하는 충북! 행복한 도민, 만남과 소통! 우리는 하나'라는 슬로건 아래 '단양에서 영동까지 천리 길‘을 종단하는 '충북종단 대장정' 사업이다.

단양에서 영동까지 '충북종단 대장정'(15.8.10-14)

매년 2,000여명의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가해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만남과 소통의 장을 마련해 도민이 함께하는 운동 분위기 확산에 기여를 한 것 같다. 특히 가는 곳마다 지역주민들이 종단원들에게 수박, 복숭아, 사과, 옥수수, 포도 등 지역 특산물을 나누어 주면서,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흐믓함을 느낀다.

- 이 모든 사회활동은 가족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텐데.

당연하다. 묵묵히 뒤에서 힘이 돼 주고 지켜봐 준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이번 훈장의 진짜 공로자는 가족이다.

1남1녀 자식들은 다 성장해서 사회인으로 잘 사고 있고, 다행스럽게도 아들이 아닌 예쁘고 딸 같은 며느리(서희정)가 곁에서 같은 약사로서 약을 조제하고 있다. 많은 힘이 된다. 지역민들에게도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인 것 같아, 가족 구성원 간의 화합과 믿음으로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건수 기자  geonba@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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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글 입니다.
2017년도 제45회 충북대학교 약학대학 정기총회 성료